법원,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 "근로 이익 사측이 누렸다"
차성민 기자
news@segyenews.com | 2017-08-31 11:16:12
[세계뉴스] 차성민 기자 =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31일 기아자동차 근로자들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한 1심 선고에서 노조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날 재판부는 근로자들이 청구한 원금 6588억원에 이자 4338억원이 붙은 합계 12조926억원 중 원금 3126억원과 이자 1097억원을 인정한 4223억원의 미지급분을 지급하라고 했다.
이로써 법원이 6년간 소송 끝에 기아자동차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통상임금을 두고 기업간 유사 소송이 줄이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계와 산업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권력중)은 31일 기아차 노조 소속 2만742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1조920억원대 규모의 임금 청구 소송에서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노조 측 청구 금액 1조926억원 중 원금 3126억원과 지연이자 1097억원 등 총 4223억원만 인정했다.
기아차 노조는 지난 2011년 정기상여금과 일비, 중식대 등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냈다. 노조 측은 이를 포함한 임금으로 지난 3년간의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연차휴가수당 등을 계산해 미지급분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정기상여금과 중식대는 통상임금으로 인정했지만, 일비는 제외했다. 재판부는 "일비는 영업활동 수행이라는 추가적 조건이 필요해 임금으로 고정성이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통상임금에 해당하려면 명절이나 연말처럼 매년 비슷한 시기에 지급되는 '정기성', 모든 직원에게 지급되는 '일률성', 업적·근무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지급되는 '고정성' 등의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재판부는 '신의칙 원칙에 어긋난다'며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사측은 그동안 '자동차 산업 자체가 어려운데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적용하면 부담 금액이 3조원대에 달해 회사 경영상 중대한 위험이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원고(노조측)은 근로기준법으로 인정된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연장·야간·휴일 근로로 생산한 부분의 이득은 이미 피고(사측)가 누렸다"며 "원고의 청구가 정의와 형평 관념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회사 경영 사정을 고려했을 때 미지급된 임금을 준다고 '기업 존립'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측은) 매년 지속적으로 당기순이익을 거둬왔다"며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근로자들 모두에게 경영성과급을 지급했는데 그 합계액은 이번 사건 청구 금액을 합한 것보다 많다"고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경영상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 위태' 등은 엄격하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한다고 가정할 경우 한국 전체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런 가정적인 결과를 예측해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 행사를 제한하는 것을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이어 "원고들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임금을 이제야 지급하는 것을 두고 비용이 추가적으로 지출된다는 점에만 주목해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 위태'는 모호하고 불확정적인 내용으로 어느 정도여야 그런 요건을 충족하는지도 알 수 없어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고 일침했다.
지난 6년간 기아차 노조와 사측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놓고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여왔다. 통상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이다.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연장·야간·휴일근무 수당 등이 계산된다. 이때문에 여러 기업에서 노사협상의 주요 쟁점이 돼 왔다.
노조 측은 청구액을 지급해도 회사 경영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고 판례에 따라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회사측은 자동차 산업 자체가 어려운데다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적용하면 회사 측 부담 금액이 3조원대에 달해 회사 경영상 중대한 위험이 초래될 것이라고 맞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13년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면서도 "회사와 노동자와 장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고, 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있다면 제외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같은 조건을 만족했더라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는 여지도 남겼다. 통상임금으로 인정했을 때 기업에 중대한 어려움을 초래하는 등 기업 존립이 어려워지는 사정이 인정되면 추가 임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기준이 애매하다는 점 때문에 산업계 전반에서는 통상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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