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부, 통신사 단말기 제조 허용 추진
장순관
news@segyenews.com | 2016-06-11 16: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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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뉴스] 장순관 기자 = 휴대전화기는 삼성과 LG 같은 제조사가 만들고, SK텔레콤 같은 이동통신사가 사실상 위탁 판매하는 게 지금의 현행 방식이다. 그런데 미래창조과학부가 최근 기간통신사들이 별도 ‘승인’ 없이 통신기기를 자유롭게 제조할 수 있게 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렇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겨냥해 통신사로서도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등 여러 가능성이 열린다.
미래부는 5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주요 내용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통신요금 인가제 대신 신고제를 도입한다는 것이지만,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대목이 통신사의 통신기기 제조 허용이다. 이 법 제17조 ‘사업의 겸업’ 조항은 기간통신사업자(매출액 300억원 이하는 제외)는 통신기기 제조업을 하려면 미래부 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했다. 통신사의 단말기 제조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이 규제를 정부가 풀겠다는 뜻이다. 지난해 19대 국회에도 같은 법안이 제출됐으나 11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다른 법안 심사에 묻혀 부결됐다.
2000년대 초반 통신사들도 단말기 제조에 나선 적이 있다. SK텔레콤이 자회사 SK텔레텍을 통해서 만든 전용 단말기 ‘SKY’가 대표격이다. SKY폰은 신세기통신(017)과 2002년 합병한 SK텔레콤이었기에 공급물량을 연간 120만대로 제한받아야 했다. 당시 LG전자 ‘싸이언’보다도 고급폰으로 인식된 SKY는 물량 제한을 채울 만큼 인기를 끌었다. SK는 정부에 연간 공급물량 확대를 요청했지만 1위 통신사의 시장지배력을 이유로 불허됐다. 이후 SK텔레텍은 2005년 팬택에 넘어갔다. SK 측은 SKY를 판 지 4년 만인 2009년에도 휴대폰 제조에 나섰다. SK텔레콤 계열은 아니지만 최신원 회장 쪽 SK텔레시스를 통해 ‘W’ 브랜드 휴대폰 제조에 재도전했다. 마침 애플 아이폰 발 스마트폰 태풍에 휩쓸려 흥행에 실패했다.
KT도 2000년대 초반 자회사 KT테크(당시 KTF테크놀로지)를 통해 직접 휴대폰 제조에 나섰다. 전용 단말기 브랜드 ‘에버(EVER)’라는 피처폰을 내놓고 송혜교 같은 톱스타 모델도 내세웠다. KT테크는 2012년까지 ‘테이크’라는 스마트폰에도 손을 댔으나 삼성전자, 애플 같은 고급 스마트폰에 밀려 2013년 1월 청산됐다. LG유플러스는 그룹에 LG전자가 있어서 휴대폰 제조에 나선 적은 없다.
시장지배력이나 경력으로 볼 때 통신기기를 다시 제조할 만한 통신사는 SK텔레콤이라는 평가가 대다수다. KT 관계자는 “통신사에 자체 제조 단말기는 제조사나 다른 경쟁사를 겨냥해 때로는 도움을 주는 ‘효자’도 되지만, 대개 돈은 안 되고 인력·설비 유지비용이 더 들어가 별로 먹을 건 없고 버리긴 아까운 ‘계륵’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유통구조 현실을 보면 통신사가 휴대폰을 만드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도전행위’다. 통신사들이 휴대폰을 대행 판매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해 왔지만 삼성, LG 같은 제조사가 최신형 모델을 제때 공급하지 않으면 통신사로서는 충격이 크다. KT의 소위 ‘홍길동폰’이 선례다. 이석채 전 KT 회장은 2010년 4월 최고경영자 조찬강연에서 “KT의 쇼옴니아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다”고 섭섭함을 토로했다. KT가 애플 아이폰을 앞장서 도입하자, 삼성전자가 ‘옴니아2’ 시리즈 중 KT의 ‘쇼옴니아’ 모델 마케팅에 소극적으로 나섰고, 차기 스마트폰들도 SK텔레콤에 우선 공급했다며 불만을 쏟아낸 것이다.
이동통신 시장점유율 약 50%로 선두인 SK텔레콤 같은 지배적 사업자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어느 휴대폰을 더 팔아줄지 통신사가 재량을 발휘할 가능성이 커서다. 종종 이동통신시장에서는 ‘갑’이 SK냐, 삼성전자냐는 논쟁이 일어난다.
SK텔레콤은 지난해부터 가수 설현을 모델로 세워 인기를 끈 ‘루나폰’ ‘쏠폰’ 같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스마트폰을 자체 기획해서 내놓아 인기를 끌고 있다. 루나폰은 삼보컴퓨터 관계사인 TG앤컴퍼니와 손잡고 아이폰의 생산기지인 폭스콘에서 OEM으로 만든다. 애플처럼 생산의 글로벌 분업화를 고려하면 ‘제조사’로 SK텔레콤이 나서는 것은 어렵잖다. 이 때문에 SK텔레콤이 SKY 시절처럼 휴대폰을 직접 만드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적잖다.
제조사들은 과거 경험과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반신반의하고 있다. 워낙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이후 입지가 상대적으로 위축된 데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불황 아래 통신사까지 제조의 빗장이 풀리면 앞날을 장담키 어렵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통신사들이 당장 고급 휴대폰을 만들어 대량 판매하기는 어렵겠지만 제조사와의 협상 카드로서의 역할은 커진다”고 걱정했다. 다른 제조사 관계자는 “앞으로 융합시대에 통신사의 영역 파괴로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하지만 전기통신사업법의 ‘통신기기’는 꼭 휴대폰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3G나 LTE, 무선랜(wifi) 등 통신 기능이 들어간 기기 정도로 해석된다. 즉 IoT 시대를 맞아 다양한 통신기기가 이번 법 개정안의 적용 대상이다. 미래부 당국자는 “IoT 같은 융합시대에 통신사도 여러 단말기를 만드는 등 경계를 허물 필요성이 커졌다”며 “이번 법 개정안도 단지 휴대폰에 국한된 차원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보통신기술(ICT) 최고 의결기구인 정보통신전략위원회는 지난해 5월 규제개선 과제로 통신사들이 간단한 센서와 기기를 만들 수 있도록 전기통신사업법 제17조 개정을 주문했는데, 그 이유는 구글이나 애플이 단지 검색이나 스마트폰 기업이 아니듯 국내 제조사는 물론 통신사도 사업 경계를 넘나들 필요성이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이미 SK텔레콤은 소형 빔 프로젝터인 ‘스마트빔’을 비롯해 여러 ICT 기기를 도입하고 있다. 2014년 8월에는 아이리버를 인수해 영역을 확장했다. KT는 ‘기가 IoT 헬스밴드·헬스바이크’ 등을, LG유플러스도 ‘U+ 에너지미터·온도조절기·스위치’ 같은 여러 기기를 내놓았다.
지배적 사업자의 입지가 더 높아질 경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참여연대는 “특히 시장지배적 통신사의 독점 단말기 출시는 지배력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경쟁을 후퇴시킬 수 있다”며 “통신사에 단말기 제조를 허용하는 것은 불필요한 조치로 보인다”는 의견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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