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통령의 말은 국가의 언어다…개혁을 삼킨 대통령의 한마디
전승원 기자
segyenews7@gmail.com | 2026-08-07 00:51:35
[세계뉴스 = 전승원 기자] 국가 지도자의 한마디는 단순한 발언이 아니다.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고 국가기관의 신뢰를 좌우하며, 국민을 통합하거나 갈등으로 이끄는 힘을 가진다. 그래서 대통령의 말은 누구보다 신중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추진과 관련해 육군사관학교와 과거 군사 쿠데타 사례를 언급한 것은 국방개혁의 본질을 둘러싼 논의를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만들었다.
당초 국방부가 설명한 통합의 취지는 분명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장교 수급 문제와 미래전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육·해·공군의 합동성을 강화하고, 장교 양성체계를 효율적으로 개편하자는 것이었다. 찬반을 떠나 충분히 정책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 이후 논쟁의 중심은 장교 양성체계 개편이 아니라 '육사 개혁', '육사 해체', '육사 지우기'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이동했다. 정책의 방향보다 표현의 의미를 둘러싼 갈등이 커진 것이다.
지도자의 언어는 정책보다 먼저 국민에게 전달된다.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표현이 적절하지 않으면 정책의 취지는 왜곡되고, 개혁의 명분은 약화될 수 있다. 결국 대통령의 한마디가 국방개혁 자체보다 정치적 논쟁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군은 역사적 경험과 조직적 자부심이 공존하는 곳이다. 특정 집단을 겨냥하는 듯한 표현은 개혁에 대한 공감보다 내부의 방어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개혁은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설득과 공감 속에서 완성돼야 한다.
대통령의 언어는 더욱 무거워야 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처럼 한마디의 말은 갈등을 풀 수도 있지만, 반대로 오랜 신뢰를 흔들 수도 있다. 대통령의 발언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국가의 공식 메시지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말을 많이 하는 능력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 가장 적절한 말을 선택하는 절제다. 즉흥적인 발언은 순간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국정 운영에서는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관계 부처가 설명과 해명에 매달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국방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조직을 겨냥한 응징처럼 비쳐서는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 군의 미래를 위한 제도 개편이라면 객관적인 논리와 충분한 설득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통령은 군의 어려움을 설명하며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취지의 표현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바람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직시하는 일이다.
최근 논란이 된 빈총 경계근무와 군 기강 문제는 단순히 일선 부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휘관의 책임이 따르는 사안이며, 그 지휘관을 임명한 인사권자의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한기성 1군단장(중장)의 인사권자는 헌법상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이재명이다. 인사권은 권한인 동시에 책임이다.
따라서 군의 문제를 "뽕나무 화살에서 신호대 화살, 갈대 화살"식의 비유로 설명하며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넘겨서는 안 된다. 동화 속 고전을 이야기하듯 국가안보 현실을 희화화할 사안이 아니다.
국가안보는 비유와 수사로 포장할 영역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안전이 걸린 문제인 만큼 지휘체계와 인사 운영, 관리·감독 시스템 전반을 냉정하게 점검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난 6월 대통령은 해병대 연평부대를 방문해 K15 경기관총 사격을 했다. 군 통수권자가 안보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장병들의 임무를 살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상징적인 현장 방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대비태세다. 만약 당시 경계근무 체계가 최근 논란이 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면 이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군의 생명은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라 실제 작전 수행 능력과 빈틈없는 경계태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일선 부대의 실수가 아니라 군 지휘체계와 관리·감독 전반을 돌아봐야 할 문제다. 국가안보는 작은 허점 하나가 국가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를 축소하거나 비유로 덮을 것이 아니라,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는 원칙이 세워져야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설명이 아니다. 군 통수권자를 믿고 두 다리 뻗고 잠들 수 있는 나라다. 안보 앞에서는 어떠한 비유도 책임을 대신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단호한 진단과 분명한 개선이다.
대통령의 혀는 개인의 혀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의 언어다. 순간의 감정이나 즉흥적 표현이 국가적 논란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단순한 말실수로 끝나지 않고 국정 운영의 신뢰 문제로 확산될 수 있다.
정책은 논리로 설득해야 하고, 개혁은 국민적 공감으로 완성해야 한다. 대통령의 언어가 개혁의 출발점이 되어야지, 논란의 불씨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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