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세계인가, 구세계인가"… 5·18을 소비한 시대착오의 민낯

전승원 기자

segyenews7@gmail.com | 2026-05-28 03:05:41

- "생각이 달랐다" 해명 역풍… 역사 감수성 실종에 국민 공분
- 신세계 정용진 회장 사과에도… "추모탑으로 진정성 보여야"

[세계뉴스 = 전승원 기자] 신세계그룹의 한마디가 오히려 더 큰 분노를 불러왔다. 정용진 회장은 스타벅스코리아의 이른바 ‘5·18 탱크데이’ 사태와 관련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지만, 정작 국민들이 기억한 것은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표현이었다. 사과는 했지만 역사 인식에 대한 본질적 반성은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단순한 마케팅 실수가 아니다. 문제는 애초에 5월 18일이라는 날짜에 ‘탱크데이’라는 기획을 올렸다는 사실 자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5·18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시민들이 총칼 앞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 흘렸던 비극의 역사다. 그런 날에 ‘탱크’라는 단어를 활용한 이벤트를 기획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역사 감수성은 무너진 상태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은 충격을 받았다. ‘신세계’를 표방하는 거대 기업이 구시대의 아픔을 마케팅 전략의 소재처럼 소비하려 한 발상 자체가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조직 전체가 정말 그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차라리 ‘신세계’가 아니라 ‘구세계’로 사명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냉소까지 나온다. 그만큼 이번 사태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시대 감수성의 퇴행으로 읽히고 있다.

그런데도 신세계그룹의 해명은 황당하다. “고의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AI에 물어봤다”, “생각조차 못했다”, “물탱크 아이디어였다”, “라임을 맞추다 보니 ‘책상의 탁’ 표현이 나왔다”는 식이다. 실무진은 책임을 피하려 했고, 그룹은 사태를 조직적 무능과 시스템 부재의 문제로만 축소하려는 모습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묻는 질문은 단순하다. 정말 아무도 몰랐는가.

신세계그룹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해당 마케팅은 팀장, 담당 임원, 본부장, 대표까지 이어지는 4단계 결재 라인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단 한 명도 “5월 18일에 탱크데이는 부적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더 심각한 문제다. 특정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역사 감수성이 무너져 있었다는 자백이기 때문이다.

더 충격적인 부분은 일부 결재자가 디자인 시안 파일조차 열어보지 않은 채 관행적으로 승인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대기업 내부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를 보여준다. 검토 없는 승인, 책임 없는 결재, 역사 인식 없는 마케팅이 결합하면서 결국 국민적 공분으로 이어진 셈이다.

정용진 회장의 과거 ‘멸공’ 발언이 다시 거론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기업 총수의 언행과 조직 문화는 분리될 수 없다. 신세계 측은 “회장 발언과 이번 사태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대중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최고경영자의 메시지와 태도는 조직 문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한국 사회 일부 기득권층에 남아 있는 시대착오적 역사 인식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민주주의의 희생을 기억해야 할 날을 소비와 이벤트의 소재로 접근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기억의 무게를 가볍게 여긴 결과다.

정 회장은 세 차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국민은 고개 숙이는 장면보다, 왜 그런 발상이 가능했는지를 묻고 있다. 진짜 사과는 “고의는 없었다”는 해명이 아니라, 왜 조직 전체가 그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철저한 성찰에서 시작돼야 한다.

정용진 회장이 진정성 있는 사과와 책임 의지를 보여주려면, 회사 내부에 민주주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공간이나 추모탑 조성을 검토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단순한 위기관리 차원의 사과문을 넘어, 역사적 아픔을 기억하고 되새기겠다는 실질적 행동이 뒤따를 때 비로소 국민의 신뢰 회복도 가능할 것이다.

기업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공적 존재라면, 역사 앞에서도 최소한의 책임과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 그것조차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브랜드도 결국 시대의 신뢰를 잃게 된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수많은 희생과 상처 위에서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에겐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뿐 아니라 제주4·3사건, 여순사건, 4·19혁명 희생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 열사 사망 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성수대교 붕괴 사고, 세월호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이태원 참사,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대구 개구리소년 사건, 화성 연쇄살인 사건,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참사,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수많은 아픔과 희생의 역사가 존재한다. 그 비극의 기억들은 결코 소비의 대상이나 기업 마케팅의 소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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