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 마리 바퀴벌레만 있을 리 없다"… 60조 원 노출된 한국, 글로벌 사모대출 뇌관에 떤다
박근종 칼럼니스트
segyenews7@gmail.com | 2026-04-24 10:27:48
- PIK 구조·AI 버블·중동 전쟁·고금리 겹악재…환매 러시 땐 은행·연기금까지 연쇄 충격 우려
[세계뉴스 = 박근종 칼럼니스트]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사모 대출(Private Credit)’을 둘러싼 부실 우려가 급속히 확산하는 가운데 국내 금융권 역시 적지 않은 규모로 이 시장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표면상 은행권의 직접 투자는 제한적이지만, 보험사·증권사·연기금 등을 통한 간접 익스포저까지 감안하면 국내 금융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로 비화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성장 둔화, 기업 실적 악화, 고금리 기조가 겹치면서 사모 대출 부실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15일 발표한 ‘금융 안정 리포트’에서 금융시장 리스크를 키우는 6대 요인 가운데 하나로 사모 대출을 지목했다. IMF는 중동 사태 이후 일부 차주 기업이 이자를 현금으로 상환하지 못하면서도, 이자를 원금에 합산해 만기에 일괄 상환하는 PIK(Payment-in-Kind) 구조를 활용해 연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숨은 연체’가 실제 지급 불이행으로 전환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IMF는 또 이른바 ‘AI 거품론’과 관련해, 시장 조정이 발생할 경우 AI 기업을 상대로 대거 공급된 사모 대출의 담보 가치가 급락하면서 해당 시장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모 대출은 은행이나 공모 채권이 아닌, 자산운용사가 투자자 자금을 모아 비공개로 기업에 직접 빌려주는 구조로, 규모는 막대하지만 정확한 투자액·운용 실태·부실 정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서도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NH금융연구소 심재찬·한준희 책임연구원과 황석규 연구위원은 지난 20일 ‘사모 신용 리스크 진단’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말부터 해외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사모 대출 펀드에 환매 제한을 걸면서 신용 리스크가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지난달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사모 대출 관련 동향을 “단기적 시장 조정”으로 보면서 “광범위한 시스템 위기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언급한 뒤, 일단 표면적 위기감은 다소 진정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중동 사태 장기화로 금리가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사모 대출은 대부분 일정 주기마다 금리가 재조정되는 변동금리 구조를 채택하고 있어, 전쟁 장기화에 따른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이 곧바로 차입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현재 사모 대출 차입 비용은 2021년 대비 약 55% 높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고금리 장기화는 필연적으로 사모 대출 부실 우려를 키운다. 특히 많은 사모 대출이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면 이를 원금에 더해 만기에 일괄 상환하는 PIK 구조를 채택하고 있어, 이자 상환조차 버거운 차주들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다가 만기 시점에 부실이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연구진은 또 지난해 말 기준 사모 대출의 19%를 차지했던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 부문이 최근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담보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는 점도 리스크 요인으로 꼽았다. 담보 가치가 떨어질 경우 은행 대출과 사모 대출을 동시에 이용한 기업들이 양쪽에서 추가 담보를 요구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리스크가 은행권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사모 대출 기업의 부실이 펀드 환매 요구로 이어지고, 은행은 기업에 추가 담보를 요구하게 되며, 결국 펀드 유동성이 부족해지면서 신용시장 전반에 연쇄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모 대출 시장은 규제 사각지대를 파고들며 지난 10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IMF는 글로벌 사모 대출 규모가 같은 기간 약 4배로 불어나 현재 약 2조1,500억 달러(약 3,25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2개 증권사가 해외 사모 대출 펀드에 투자한 금액은 지난해 기준 17조 원으로, 1년 새 23% 늘었다. 보험사, 은행, 국민연금 등 기타 금융사와 기관투자가의 익스포저까지 합하면 60조 원을 웃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해외에서 이미 환매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 1분기 미국 사모 대출 펀드에서 투자자들이 환매를 요청한 금액은 30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사모 대출 업계의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했고,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는 ‘펀드런(Fund Run·대규모 환매)’ 실태 조사에 착수했다. 기업 실적 부진과 자금 이탈이 일회성 충격에 그치지 않고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뉴욕 월가에서는 이 같은 사모 대출 리스크가 크레디트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금융권 전반의 ‘크레디트 크런치(신용 경색)’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무디스는 2026년 크레디트 시장 전망에서 ‘테일 리스크(Tail risk·발생 확률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파괴력이 큰 위험)’ 시나리오로 ‘사모 대출 스트레스의 전염(Stress in private credit generate contagion)’을 제시했다. 규제 사각지대에서 비대해진 사모 대출 시장이 붕괴할 경우, 이와 얽혀 있는 광범위한 금융 시스템이 연쇄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0월 실적 발표 자리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보였다면, 아마 더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When you see one cockroach, there are probably more)”며 사모펀드 리스크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바 있다. ‘한 마리 바퀴벌레만 있을 리 없다’는 비유를 통해, 표면에 드러난 부실 뒤에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금융당국이 뉴욕 월가의 사모 대출 부실과 환매 러시를 ‘강 건너 불’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금융권과 개별 펀드의 투자 내역, 운용 구조, 잠재 부실을 면밀히 점검하고, 스트레스 테스트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당장 뚜렷한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고 방치하거나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가는, 개별 펀드의 부실이 곧바로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비은행권과 그림자금융을 포괄하는 거시 건전성 기준을 서둘러 정비하고, 이를 토대로 거시 건전성 정책(Macroprudential policy)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시에 고위험 상품의 불완전 판매를 막고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소비자 보호 장치 역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 재차 강조되고 있다.
[ⓒ 세계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