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연월일 재판'에 갇힌 대한민국…사법부는 왜 스스로 법을 외면하는가

전승원 기자

segyenews7@gmail.com | 2026-09-05 19:22:47

- 법은 '6·3·3' 원칙 '반드시' 명령했다…그런데 정치인 재판은 왜 수년을 끄는가

[세계뉴스 = 전승원 기자] 대한민국에서 정치인을 향한 형사재판은 언제 마침표를 찍을지 알 수 없는 '연월일(年月日) 재판'이 되어버렸다. 기소 후 첫 공판이 열리고, 무수한 증인신문과 꼼수 상고가 이어지는 동안 계절은 몇 번이나 바뀐다.

재판이 끝날 때쯤이면 당사자의 정치적 운명은 물론, 정권도 선거판도 이미 판도가 바뀐 뒤다. 지연된 재판이 정치 판도를 흔들고, 사법 정의의 공백을 정치가 채우는 기이한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묻지 않을 수 없다. 법원이 유무죄를 가리는 데 정말 그토록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사법부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판결을 유예하고 있는 것인가. 이는 단순한 재판 절차의 지연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신뢰를 뿌리째 흔드는 중차대한 경고등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270조는 '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규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선거범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해 신속하게 진행해야 하며, 제1심은 공소제기일부터 6개월 이내, 제2심과 제3심은 전심 판결 선고일부터 각각 3개월 이내에 반드시 판결을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6·3·3 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조항은 유령 취급을 받는다. 1, 2년을 넘어 임기를 거의 마칠 때쯤에야 결론을 내거나 벌금형으로 빠져나가게 방치하는 사법부의 늑장 태도는 "법이 있으나 마나 한 사회"라는 국민적 자조를 낳았다.

물론 복잡한 사건의 심리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은 중요하다. 그러나 방어권 보장과 무제한적인 재판 지연은 동의어가 아니다. 선거는 국민이 권력을 위임하는 신성한 절차다. 공직자가 범죄 혐의를 받는다면 국민은 그가 직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지 신속히 알 권리가 있다. 재판이 임기 말까지 늘어지면, 유죄일 경우 '너무 늦은 정의'가 되어 국민 세금을 낭비하게 만들고, 무죄일 경우 당사자에게 '억울한 굴레'를 씌워 정적들의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어느 쪽이든 피해는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대법원 역시 과거 판결에서 선거범 재판 지연이 국민적 불신을 초래함을 경고한 바 있으며, 주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2심 선고 후 불과 36일 만에 신속하게 상고심 판결을 내려 사법 불신과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한 전례가 있다. 이는 법원이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신속하게 재판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음을 보여준 명백한 증거다. 그런데 왜 특정 사건은 속전속결로 처리되고, 다른 사건들은 수년씩 묵혀두는가.

판결이 나오지 않는 빈자리는 '사법 리스크', '정치 탄압', '사법부 편향'이라는 음모론과 정치적 선동이 채운다. 판결이 늦어질수록 정치적 해석의 여지는 커지고, 정치권은 미완의 재판을 무기 삼아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 재판 지연이 정치를 선동으로 물들이고 사법의 권위를 스스로 갉아먹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사법부가 정치적 압력과 의혹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정치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치보다 먼저 판결하는 것'이다.

이제 사법부는 '6·3·3 원칙'을 명목상의 조항이 아닌 실제 재판 운영의 엄격한 가이드라인으로 확립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재판이 지연될 경우 그 사유와 경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설명하는 사법행정적 책임도 다해야 한다. 정치권 역시 재판을 임기 연장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꼼수를 중단하고 법원의 판결을 겸허히 수용하는 정교한 법치 의식을 가져야 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사법부는 정치인의 임기를 기다려주는 기관도, 정치적 파장이 가라앉길 눈치 보는 기관도 아니다. 법과 증거에 따라 제때 판결을 내리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만이 무너진 사법 신뢰를 회복하고 대한민국 정치를 정상화하는 유일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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