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 앞의 평등을 지키기 위한 장치, 법왜곡죄
전승원 기자
segyenews7@gmail.com | 2026-03-12 20:21:23
- 사법 권력 역시 법 위에 설 수 없다는 원칙
[세계뉴스 = 전승원 기자] 법치주의의 핵심은 단순히 법이 존재한다는 데 있지 않다. 그 법이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는가에 있다. 국민이 법을 신뢰하는 이유 역시 권력의 크기나 지위의 높낮이에 관계없이 모두가 동일한 기준 아래 서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논의되는 법왜곡죄는 단순히 형법 조항 하나를 추가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법치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 형법 체계에서 직권남용죄는 주로 행정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적용돼 왔다. 공무원이 권한을 남용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부당한 일을 강요했을 때 이를 처벌하는 규정이다. 이 조항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도 합헌으로 인정됐고 실제로 수많은 사건에서 적용되며 공직 권력 남용을 통제하는 장치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행정부 공무원의 권한 남용은 처벌하면서, 사법 절차에 관여하는 권력, 즉 판사나 검사와 같은 법 집행 주체가 법을 왜곡했을 경우에는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법을 왜곡한다면 그 피해는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법치 신뢰를 흔들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형사 규정은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논의되는 것이 바로 법왜곡죄다. 형법 개정안에 따르면 형사 사건에 관여하는 판검사 등이 타인에게 위법하거나 부당한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침해할 목적으로 재판이나 수사 과정에서 법령을 왜곡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법이 사법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사법 독립이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할 자유를 의미할 뿐, 법을 의도적으로 왜곡할 자유까지 포함하는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법을 왜곡하는 행위에 대한 책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법 권력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될 위험이 있다.
이미 직권남용죄가 존재하고 합헌으로 인정되어 수많은 공무원을 처벌해 온 현실을 생각하면, 사법 절차에 관여하는 공무원에게도 유사한 책임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법적 균형에 가깝다. 직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권한을 남용했을 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은 법치주의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의 본질은 복잡하지 않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을 왜곡했을 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다.
우리가 진심으로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을 지키고자 한다면 이에 반대할 명분도, 굳이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이참에 대법원의 상징인 정의의 여신상을 떠올려 보자. 정의의 여신은 한 손에는 천칭을, 다른 한 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다.
천칭은 공정한 판단을 의미한다. 누구의 권력이 더 큰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증거를 공정하게 저울질하겠다는 뜻이다.
법전은 법치주의를 상징한다. 판단은 개인의 의지나 권력이 아니라 법이라는 기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짚어볼 대목이 있다. 대법원에 자리한 정의의 여신상에는 정작 눈가리개가 없다.
그래서 말이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눈가리개를 씌우는 것이 어떨까.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리는 이유는 단 하나다. 사람의 신분과 권력, 재산을 보지 않고 오직 법의 기준만 보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눈을 부릅뜬 여신상을 마주한 채 과연 공정한 정의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만약 이 상징이 현실에서도 제대로 작동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씁쓸한 말이 반복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법왜곡죄 논의는 특정 집단을 겨냥한 처벌 규정이 아니다. 그것은 법을 다루는 권력 또한 법 위에 설 수 없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법치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법을 만드는 사람도, 집행하는 사람도, 해석하는 사람도 모두 같은 법 앞에 서야 한다는 원칙.
그 원칙이 지켜질 때 비로소 국민은 법을 두려워하는 사회가 아니라 법을 신뢰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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