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성실하게 보험료 낸 사람이 손해 보는 연금…공적연금의 원칙이 흔들린다
박근종 칼럼니스트
segyenews7@gmail.com | 2026-11-04 13:36:48
[세계뉴스 = 박근종 칼럼니스트] 국민연금에 10년간 꼬박 보험료를 납부한 사람보다 보험료를 내지 않고 세금으로 지원받는 기초연금 수급자가 더 많은 연금을 받는다면, 과연 누가 성실하게 보험료를 납부하려 하겠는가.
공적연금의 근간은 신뢰다. 국민이 현재의 소득 일부를 미래의 노후를 위해 내놓는 것은 국가가 그 기여에 상응하는 노후소득을 보장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 기여한 사람보다 기여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제도의 정당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2025년 개정된 국민연금법에 따른 소득대체율 43%를 적용하면, 평균소득 가입자가 최소 가입 기간인 10년을 채웠을 때 받는 월 노령연금은 약 34만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반면 2026년 기초연금 기준연금액은 월 34만9,700원이다. 단순 비교하면 10년간 보험료를 납부한 국민연금 수급액보다 기초연금이 더 많은 역전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은 제도의 목적과 재원 구조가 다르다. 국민연금은 보험료 기여를 기반으로 한 사회보험이고, 기초연금은 노후 빈곤을 완화하기 위한 조세 기반의 공적부조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두 제도의 급여를 단순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제도의 목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민이 느끼는 형평성의 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기여에 따른 보상이라는 국민연금의 기본 원칙이 기초연금과의 관계에서 설득력을 잃는다면 장기 가입을 유도하는 제도적 동력도 약해질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민연금을 성실하게 납부한 사람에게 기초연금까지 삭감하는 이른바 '국민연금 연계 감액 제도'가 또 다른 불신을 낳고 있다.
국민연금 수령액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기초연금을 감액하는 현행 제도는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수령액이 늘어날수록 기초연금 혜택이 줄어들 수 있는 구조다. 2025년 기준 감액 대상자는 약 84만 명에 달하고, 최근 5년간 감액된 기초연금 총액은 2조8,293억 원으로 집계됐다.
더욱 주목해야 할 대목은 감액 대상자의 상당수가 고액 연금 수급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제시된 통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월 수령액이 100만 원 이하인 수급자가 전체 감액 대상자의 80.5%를 차지한다. 이들의 평균 감액액도 월 9만6,000원에 이른다.
평생 소득의 상당 부분을 보험료로 납부하고도 노후에 받는 급여가 충분하지 않은 저소득 가입자에게 감액 부담이 집중되는 것은 정책의 형평성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기초연금은 노인 빈곤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소득 하위 70%라는 광범위한 수급 기준은 재정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소득과 자산 수준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노인에게까지 동일한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
반면 정작 빈곤의 최전선에 있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기초연금을 받더라도 생계급여가 조정되는 문제에 직면한다. 명목상 지원을 확대하면서 실제 가처분소득의 개선 효과는 제한되는 모순이다. 지원이 가장 절실한 계층에 더 두텁게 돌아가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초연금 재정 부담도 커지고 있다. 수급 대상과 지급액을 현재 방식대로 확대하는 데에는 분명한 재정적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재정 부담을 이유로 취약계층의 노후 안전망부터 줄여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일률적인 축소가 아니라 지급 대상과 급여 수준을 소득·자산·노후소득에 따라 합리적으로 재설계하는 일이다.
첫째, 국민연금의 기여 원칙을 회복해야 한다. 최소 가입 기간 10년이라는 현행 수급 요건의 적정성을 재검토하고, 장기 가입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가입 기간을 15년으로 일률적으로 높이는 방안은 수급권을 얻지 못하는 가입자를 늘릴 수 있는 만큼, 저소득·불안정 노동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과 가입 기간 보완 장치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가입 문턱을 높이는 것이 개혁의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둘째, 기초연금은 하후상박(下厚上薄)의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 소득 하위 계층에는 더 두터운 지원을 제공하고, 상대적으로 노후소득이 안정된 계층에는 지급 수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특히 국민연금 수급액만을 기준으로 기초연금을 감액하는 현행 방식은 재검토해야 한다. 두 연금의 합산 소득과 실제 생활 수준을 고려해 저소득 장기 가입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기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셋째, 국민연금과 기초연금만으로 노후를 책임지겠다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결합한 다층적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연금저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 사적 노후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세제 혜택을 현실화하고, 중산층이 스스로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유인책을 강화해야 한다.
공적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지탱하는 최후의 안전망이다. 그러나 안전망이라는 이름으로 제도의 비효율과 불합리한 구조까지 보호할 수는 없다. 보험료를 납부한 사람은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국가가 더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 공적연금이 지향해야 할 기본 원칙이다.
성실한 납부자가 손해를 보고, 정작 도움이 절실한 빈곤층은 충분한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구조라면 개혁의 방향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연금 개혁은 인기투표가 아니다. 지금 세대의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미래 세대에 재정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책임 있는 국가 운영이 아니다. 국민이 납부한 보험료의 가치를 지키고, 국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며, 가장 어려운 노인에게 실질적인 지원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성실한 기여가 존중받고 가난한 노후가 외면받지 않는 것. 그것이 공적연금 개혁의 출발점이자 국가가 지켜야 할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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