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뉴스 = 탁병훈 기자] 석유를 대체할 새로운 탄소 원료로 이산화탄소(CO₂)와 음식물쓰레기·가축분뇨·하수찌꺼기 등 유기성 폐기물이 주목받고 있다.
국내 연구진이 이산화탄소와 수소를 활용해 기존 공정보다 낮은 온도에서 액체 탄화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유기성 폐기물에서 발생하는 바이오가스를 활용해 지속가능항공유(SAF)를 생산하는 기술 개발에도 나서면서 석유 중심의 연료·화학산업 구조를 바꿀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화학연구원 박용기 책임연구원 연구팀은 이산화탄소와 수소를 촉매와 반응시켜 약 300℃ 조건에서 액체 탄화수소를 직접 생산하는 촉매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에는 이산화탄소를 먼저 일산화탄소로 전환한 뒤 다시 탄화수소를 생산하는 등 여러 단계의 공정을 거쳐야 했다. 연구진은 새로운 촉매를 활용해 이산화탄소에서 액체 탄화수소로 이어지는 공정을 단순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 버려지는 폐기물이 항공유 원료로
한국화학연구원이 주목하는 또 다른 분야는 유기성 폐기물을 활용한 연료 생산이다. 음식물쓰레기와 가축분뇨, 하수찌꺼기 등 유기성 폐기물을 미생물로 분해하면 메탄과 이산화탄소가 포함된 바이오가스가 발생한다.
이 바이오가스를 개질하면 일산화탄소와 수소로 구성된 합성가스를 만들 수 있고, 이를 촉매 반응을 통해 탄화수소로 전환하면 지속가능항공유 생산에 활용할 수 있다.
이는 기존에 폐기물로 처리되던 유기성 자원을 연료 생산을 위한 탄소 원료로 다시 활용하는 방식이다.
특히 항공산업은 전기나 수소만으로 단기간에 기존 항공유를 대체하기 어려운 분야로 꼽히면서 SAF가 탄소 감축을 위한 주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 '탄소를 배출하는 산업'에서 '탄소를 다시 쓰는 산업'으로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합성연료 기술의 핵심은 탄소를 새롭게 채굴하는 대신 이미 배출된 탄소를 다시 산업 원료로 활용한다는 데 있다.
석유는 지하에 존재하는 탄소를 추출해 연료와 석유화학제품으로 사용한 뒤 대기 중으로 탄소를 배출하는 구조다.
반면 CO₂를 탄소 원료로 활용하는 기술은 외부에서 공급되는 수소와 촉매 반응을 통해 탄소를 다시 탄화수소 형태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 기술이 곧바로 '탄소중립 석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탄소감축 효과를 확보하려면 수소 생산 과정에 사용되는 에너지가 무엇인지, 이산화탄소를 어디에서 포집하는지, 합성연료 생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
■ 원유 수입 의존도 낮출 새로운 선택지
한국은 원유를 대규모로 생산하지 않지만 세계적인 정유·석유화학 산업을 기반으로 항공유 등 고부가 석유제품을 생산해왔다.
이 때문에 국제유가와 원유 공급망 변화는 국내 산업과 에너지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항공유는 항공산업의 특성상 단기간에 석유 기반 연료를 전면적으로 대체하기 어려워 원료 다변화가 중요한 분야다.
폐기물에서 발생하는 바이오가스와 이산화탄소를 새로운 탄소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면 원유를 수입해 연료를 만드는 기존 구조에 새로운 선택지를 추가할 수 있다.
■ 기술 상용화까지 넘어야 할 과제도
CO₂ 기반 합성연료와 폐기물 기반 SAF가 석유를 실제로 대체하기까지는 기술적·경제적 과제가 남아 있다.
촉매의 성능과 수명, 수소 가격, 이산화탄소 포집 비용, 폐기물의 안정적인 공급망, 대규모 생산설비 구축 비용 등이 상용화의 주요 변수다.
특히 SAF의 경우 원료를 확보하는 것뿐 아니라 생산된 연료가 실제 항공유로 사용될 수 있도록 품질과 안전성, 지속가능성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연구실에서 연료를 만드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경제성을 갖춘 대규모 생산체계로 확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석유를 완전히 대체할 하나의 기술이 아직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를 다시 탄소 원료로 활용하고, 음식물쓰레기와 가축분뇨 등 버려지는 자원에서 항공유 원료를 확보하는 기술은 석유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석유를 땅에서 꺼내 사용하는 산업에서 벗어나, 배출된 탄소와 버려진 자원을 다시 연료와 산업 원료로 순환시키는 산업구조를 만드는 것.
한국화학연구원이 추진하는 CO₂·바이오가스 기반 연료 기술은 에너지 안보와 탄소감축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기 위한 기술적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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